1. 찬욱이형은 이번 영화에서 아주 작정하고 막나가더군요. 그러니까 막나간다는 의미는 하고싶은거 했다는 거지요. 촬영현장에서 프로듀서가 "감독님 이거 좀 너무 나가는거 아닐까요?" 그러면 찬욱이형이 "괜찮아 난 거장이니까." 라는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낄낄거렸을 것 같은 영화네요. 특히 다른건 모르겠고, 신하균, 송강호, 김옥빈의 쓰리섬(-_-) 장면에서 그게 아주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이토준지가 생각난건 저만 그런겁니까?)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 느껴집니다. 의도한 바가 너무 뻔하게 느껴지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후진 영화라는건 아니예요. 오히려 좋은 영화라는 거지요. 그러나 좀 건방지다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박찬욱 정도면 건방져도 되지요. 인정하겠습니다.
2. 전 이 영화가 그렇게 길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단 한순간도 생각이 다른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집중하면서 봤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지루했거나 길었다는 평도 많았지만요. 그런데 이상하게 공허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영화가 지루하지도 않았고, 재미있게 봤는데, 뭔가 빠진 느낌이 들어요. 단어로 표현하자면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입니다. 다들 그렇게 허접하다고 노래를 부르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전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없었거든요. 요상합니다. 어떤 부분이 밀도가 떨어지는지 말해봐라. 하면 또 말하기 힘들거든요-_-
3. 김옥빈의 연기는 뭐 그냥 그랬어요. 뭐 좀 너무 배우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보일려고 오바한 면이 있다는 평이 있던데, 그건 아무래도 찬욱이형이 디렉팅을 한 것 같구요. 개인적인 감상을 쓰자면 박찬욱이 즐겨쓰는 대사인 "나는요..."라는 단어를 참 기분 좋게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그 대사 저 무지 좋아하거든요. 어감이 좋아서. 근데 참 태주의 역할이 보여줄 것이 많은 역할이라 뭐 잘했다고는 생각되는데, 솔직히 김옥빈보다는 김해숙씨의 연기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옥빈씨에겐 미안하지만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군요. 노출연기도 글쎄요. 난 되게 야할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김옥빈의 영화라기보다는 김해숙씨의 영화죠. 특히 눈 깜빡이는 시퀀스는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서 혼자 머리감기도 무서워요.ㄷㄷㄷ
4. 영화에 관한 이야기나 하죠. 스포일러? 아마 있을 것 같은데...어차피 읽을 사람도 많지 않으니-_- 전 처음에 태주는 정말 지옥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신부를 유혹하는 팜므파탈은 맞지만, 적어도 미친년은 아니라고 생각했죠-_- 라여사와 강우가 진짜 나쁜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금자처럼 나쁜년이지만, 더 나쁜 개새끼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쁜년이 되는. 그런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ㄷㄷㄷ 그게 진짜 엄청나게 충격적이었어요. 알고보니 단순한 라여사와 강우는 마마보이와 재수없는 시어머니 수준이고, 진짜 생또라이는 태주더군요. 이게 감독이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저 혼자 오해하고 충격먹으면서 지랄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태주의 캐릭터가 좀 난잡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되게 불쌍했다가, 나쁜년이 됐다가, 미친년이 됐다가, 짐승이 되고, 마지막 자살시퀀스에서는 되게 귀엽다가 순정과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더군요. 입체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거의 정신이상자급이네요. 아, 태주는 정신이상자가 맞나?
5. 이번에는 자지이야기 좀 해보죠. 자지란 단어가 좀 불편하긴 합니다만, 영화에서 그 장면을 보신분이라면 아마 자지라는 단어를 쓰는게 적당하다고 해주실거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에서 만큼은 성기나, 음경, 중요한 부분이 아닌 그저 <자지>일 뿐이죠. 이 장면이 꼭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는 떠나서 지나치게 친절한 이 영화를 더더욱 친절하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아, 혹시 이 영화가 친절하다는 평에 딴죽을 거실분들이 있을지 몰라서 말씀드리자면, 진짜 허벌나게 친절한 영화입니다. 불편함과 불친절함은 구분해야하지요. 어쨌든 의도는 이해가 가고, 필요하다고도 생각했어요. 강간을 하려던 상황인데 발기도 안된, 그저 아저씨의 축늘어진 자지. 확실히 신이 아닌, 욕망에 충실하려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확실하게 오버랩되었습니다. 거 말로 써놓으니까 좀 코믹하네요-_-
6. 구원 이야기도 좀 해야겠어요. 뭐 구원이네 뭐네 해봤자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고...<친절한 금자씨>에서 마지막 시퀀스가정말 좋았거든요. 두부케이크 시퀀스 말이죠. 뻔하게 이제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는 이야기인데, 정말 박찬욱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뻔하게 죄받은 자, 사하여주리라. 이런 느낌이 아니라, 나름 귀엽고, 고통스럽고, 절절했죠. 이금자의 캐릭터 자체에 감정이입을 한 영화라 그런는 모르겠어요. 관객들은 모두 이금자의 구원을 바라고, 찬욱이형도 이금자에게 구원을 줬지만 그게 할리우드식의 뻔한 구원이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런데 <박쥐>에서 '그들'의 속죄와 구원은 좀 불편하네요. 그러니까 영화가 불편하다의 불편이 아니라, 마음에 안든다는거죠. 찬욱이 형 영화를 보면 되게 변태적이지만 그래도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애정이 보였거든요? 그런데 <박쥐>는 애정이라기 보다는 그냥 계산된 구원같아서요. 되게 가벼워보였어요. 물론 시퀀스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봤을 때는 그저그랬습니다. 그냥 둘이 치고받다가 같이 자멸하는게 차라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드네요. 물론 또 실제로 그랬으면 투덜거렸겠지만요.
어쨌든 영화 자체는 좋았지만, 걸작이네 뭐네 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찬욱이형은 신나서 만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저는 영화보면서 그렇게 신나진 않았어요. 찬욱이형이야 이제 거장 취급해드려도 되니까. 이런식의 거장놀이가 불쾌하진 않아요. 오히려 임권택 감독의 거장놀이가 더 불편하지요. 같은 거장 놀이여도 임권택 감독님의 스타일로 했다면 좀 짜증났겠지만, 박욱이 형은 그래도 좀 신나게 하고 싶은거 다 한 것 같긴 하네요. 어쨌든 확실한 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박찬욱 영화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것이죠.
# by | 2009/05/04 17:00 | 김고기 극장 | 트랙백 | 덧글(5)




